형식에 담은 교술적 성격의 경기체가는 향유계층의 이념과 역사적 성격, 표현기법에서 서로 판이한 것이 사실이나, 형식에 있어서 연장의 형태나 후렴구와 감탄사 등 형식에 있어 공통점도 엿보인다. 이러한 형태상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하여, 고려시대의 시가를 전체적으로 포괄하여 가요나 장가라
시가이다. 한문구를 나열하였으며, 부분적으로 이두를 사용했다. 내용은 퇴폐적, 고답적, 현실도피적이다. 일부 작품은 신진 사류들의 의욕적인 기개와 의식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2권」, (지식산업사 1989) pp.187-201
※ 경기체가와 고려속요의 비교
경기체가는 속요와 함께
경기체가, 한국문학연구입문, 황패강 외 편, 지식산업사, 1982
성호경도 한림별곡을 대상으로 하여 경기체가에서 제시되는 세계상이 실재의 세계상이 아닌 상상의 세계상이라도 작자와 독자 사이에 잘 알려져 있어 동일한 정서적 체험을 얻을 수 있다면 작품이 성립되므로 경기체가에서 드
개념들이, 비록 충분한 해명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논자(論者)들이 처한 시대와 저마다의 관점에서 시조의 일면을 언명(言明)하고 있는 것임은 틀림없다.
大舜云「詩言志」 歌永言」이라고 한 것은 詩와 歌의 성질을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하여 밝힌 것이지만 처음부터 시란 시가로서 문학적 요소와
경기체가에 대한 근대적인 연구는 자산 안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929년 『별건곤』12월호에 기고한 「조선가시의 묘맥」이란 글에서 경기체가를 ‘경기체’라 하여 우리 시가의 한 장르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체를 첩성체의 일종이라 보고, 그 체의 한 작품인 「한림별곡」은 고려 자연
경기체가작품들과는 연행 상황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의 형식이 기본형에서 약간씩 벗어남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경기체가라는 장르적 틀이 아직 정착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연행 장소가 사적인 연향의 자리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동별곡」에서는 후렴구 ‘偉(爲)~景 긔
고려속요는 고려 문학의 진수라 할 수 있는 것으로, (평민)들의 진솔한 감정이 투영된 것으로 (구전)되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문자로 정착되었다.
시조는 고려말에 발생한 (3)장 (6)구의 단가(短歌)로, 우리 고유의 노래이며 국문학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이 때에 이루어진 것은 모두 (구전 문학)이였으
론의 세계주의에 입각해서 국제간의 친선과 상호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김학동, 한국 개화기 시가 연구 , 시문학사 1981. p.57
② 이 작품은 《독립신문》3호에 게재된 것으로 개화기 시가 가운데도 초창기에 속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창작을 게재하는 독립된 난이 마련되지 않
용어는 경기체가, 속요, 악장, 가사, 장시조 등, 가곡으로 불려지는 긴 노래를 모두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노래의 長短을 구별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다. 특히 지봉유설에 보면 악장과 경기체가를 모두 장가로 불렀다는 기록이 나오는 등 하나의 독립된 장르명칭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시가로 기록문학으로는 시조와 가사가 중심을 이루면서 발전하고 구비문학으로는 민요, 무가, 잡가, 같은 작품들이 존재했다. 그런데 민요는 기록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것이 온전히 남아 있는 작품은 극히 소수이거나 전무한 편이다.
조선조의 시가는 구비문학의 범주에 드는 작품들